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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항쟁 21주년과 시민의 모임

집회이야기/촛불항쟁 | 2008.06.09 18:33 | Posted by Namu(南無)

2008년 6월 10일은 1987년 6월 10일부터 폭발한 6월 항쟁의 21주년 기념일입니다.

87년 6월 항쟁은 고문 치사로 인한 박종철 열사의 사망이 기폭제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제5공화국 전두환 정권의 탄압에 대해 6월 10일 24만 명 (경찰 발표 1만 8천 5백 명)이 모인 것으로 시작하여 6월 18일 1백 50만 명(경찰 발표 8만 6천 명)이 모여 정권에 대한 반대 집회를 가졌습니다. 꾸준한 시민들의 강력한 저항은 경찰력으로 한계를 보이고 이에 대해 군 병력의 투입까지 고려되었지만, 6월 29일 유명한 노태우의 6.29 선언이 나오게 됩니다. 이어서 6월 9일 경찰의 최루탄 직격 사용에 의해 사망한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이 열려진 7월 9일 1백만 명이 넘는 시민이 모이는 것으로 6월 항쟁은 그 정점을 찍게 됩니다. 왜 이게 끝이 아니고 정점인가 하면, 이어 7, 8, 9월 이어서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어졌고 이것으로 많은 인권과 노동자의 권익이 보장되게 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인터넷 6월 항쟁 기념관6월 항쟁 전개 과정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인터넷 6월 항쟁 기념관에는 진행 과정에 대한 일지와 그에 대한 각종 문서, 자료가 가득하니 그것만 읽어도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그런데, 이게 고작 21년 전의 일이고 이런 시민들의 투쟁과 항쟁, 그리고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이런 풍족하고 자유로운 생활을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그 이전 어떠한 독재 정권도 우리에게 해준 적 없는 것이며 그 모든 것을 우리 손으로 이뤄낸 것입니다. 하지만 이후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가 집권을 하고, 그 다음 김영삼이 집권함으로써 실제 이들 정권을 내몬 것은 그 뒤 10년이 지난 김대중 문민 정부 이후가 됩니다. 80년 6월 항쟁이 심재철이라는 변절자에 의한 서울역 회군으로 실패에 그친 미완의 혁명이었다면, 87년 6월 항쟁은 실제 개헌이라는 큰 씨앗을 얻었고 그 씨앗을 10년 뒤 싹트게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우리 역사에 크게 남을 일입니다. 물론, 그 씨앗이 잘 싹텄냐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87년 6월의 시민들의 항쟁이 헛된 것은 절대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현재 시민들의 모습을 87년 6월 항쟁에 빗대고 있습니다. 저는 그게 이해가 가면서도 조금 쑥쓰럽습니다. 그때의 지옥 같은 상황에서 정부의 폭력을 견디며 6월 한 달을 지낸 그때의 시민들에 비하면 우리는 꽤 즐겁거든요. 물론 경찰의 폭력 진압이 두렵긴 합니다만, 이 역시 21년 전과 비교하면 약과인지라 6월 항쟁과 지금의 시민의 모습을 비교하기는 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때 그 분들과는 다른 영역에서 시민 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자유롭게, 더 다양한 의견을 담으며, 새로운 방법으로 정부와 맞서고 있으며, 일부 충돌이 있지만 시민 다수가 비폭력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민들의 모습은 한국에서도 처음이고 세계 역사를 더듬어봐도 없지 않나 싶습니다. 이렇게 두리뭉실하게 말씀드리는 것은 제 기억만 뒤집어 본 거라 그렇습니다. 사료를 모두 찾아본 것은 아닌지라.

자, 어쨌든 운 좋게(?) 날짜가 겹쳐 이번 6월 10일을 전후한 시민들의 운동은 6월 민주화 항쟁 기념 행사와 함께 합니다. 그래서 그 일정에 대해서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평일인지라 참석하기 힘들긴 합니다만 9일부터 10일에 걸쳐 다양한 행사가 있습니다.
1987. 02. 06 박종철 열사를 추모하는 횃불 집회에서 학생들이 영령을 달래는 모습

2008년 6월 9일

17:00 이한열 열사 추모 문화제 (연세대)
19:00 6.10 대행진 전야제 (시청 광장)
22:00~28:00 촛불시위 이후 한국 사회의 미래에 대한 국민 토론회(시청 광장)
 - 주최 :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 주관 :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전국교수노동조합, 학술단체협의회
 1부) 이명박 정부의 성격과 한계 - 사회 : 최갑수(서울대 서양사학)
  ①광우병과 쇠고기 협상 - 우희종(서울대 수의학)
  ②한반도 대운하 - 홍종호(한양대 경제학)
  ③교육 정책 - 주경복(건국대 교육학)
  ④사회공공성 해체 - 나상윤(공공연맹 정책위원장)
 2부) 촛불과 촛불 이후 - 사회 : 서유석(호원대 철학)
  ①이명박 정부와 민주주의 실종 - 김상곤(한신대 경영학)
  ②광우병 정국 쟁점 - 홍성태(상지대 사회학)
  ③촛불집회의 의미 - 정태석(전북대 사회학)
  ④촛불 이후 한국사회 - 강남훈(한신대 경제학)

1987. 07. 09 이한열 열사를 추모하는 집회 행렬

2008년 6월 10일

10:00 6월 항쟁 21주년 공식기념식 (프레스센터20층)
12:00 6월 항쟁 21주년 민간기념식 타종 및 시청 행진 (명동 향린교회)
14:00 박종철기념관 개소식 (구 남영동 대공분실)
17:00~19:00 이한열 열사 국민장 재연(연세대부터 시청광장까지 국민장 행렬)
19:00 6.10 고시철회! 즉각재협상! 국민무시 이명박 정권 심판 100만 촛불대행진(시청 광장)

이렇게 우리에게 자유로운 대한민국을 물려준 그때 시민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87년 6월의 물결을 통해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씨앗을 주신 선배님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지금 2008년 6월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그 씨앗을 소중히 키워나가고자 합니다. 이 물결에 모두가 함께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이 물결을 많은 분들이 이 모습을 중계해 주시리라 믿고, 많은 시민들이 이 모습을 보고 시민들의 현재 모습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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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dhunter.egloos.com bzImage 2008.06.10 00: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a href="http://img2.dcinside.com/viewimage.php?id=military&no=29bcc427b48677a16fb3dab004c86b6f9a697bf10be2d1d66b764c0b374c6ead7c10c4308a097db9bb846017e1703c4d6e05e9b25a26496f42b1d395475c3b&f_no=7cef896babd828a1">http://img2.dcinside.com/viewimage.php?id=military&no=29bcc427b48677a16fb3dab004c86b6f9a697bf10be2d1d66b764c0b374c6ead7c10c4308a097db9bb846017e1703c4d6e05e9b25a26496f42b1d395475c3b&f_no=7cef896babd828a1</a>

    10년 전의 이 문귀가 아직도 가치가 있는 대한민국이라는게... 한편으론 좀 씁쓸하네요.